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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예스터데이]는 영국이 낳은 세계적 감독 대니 보일과 워킹 타이틀을 대표하는 각본 겸 감독 리차드 커티스가 완벽한 듀오를 이룬 야심작입니다. 이 작품은 [브리짓 존스] 시리즈를 비롯하여 [노팅힐], [러브 액츄얼리], [어바웃 어 보이] 등을 같이한 리차드 커티스가 없었습니다면 불가능한 프로젝트였습니다. 리차드 커티스의 모든 작품들은 사실상 영국 영화와 동의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워킹 타이틀의 프로젝트에선 “아무도 비틀즈를 기억하지 못하는 세상에선 유일하게 그 음악을 기억하는 뮤지션에 대한 얘기”라는 컨셉 아이디어를 들은 리차드 커티스는 자신이 자처하고 시나리오를 구상했습니다.


[아...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 미리 얘기하자면, 별도의 cookie영상은 없습니다.]

 

 리차드 커티스는 종종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직접 감독했지만, 이 작품은 가장 먼저 떠오른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누군가 이 영화를 감독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좋은 시나리오의 1번째 조건은 무슨 감독이 와서 감독해도 좋을 만한 시나리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단 시나리오를 다 쓰고 나서는 대니 보일 감독에겐 가장 먼저 연락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라고 전했습니다.


 

 리차드 커티스와 대니 보일은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을 감독했던 대니 보일이 배우 로완 앳킨슨을 주인공으로 하여 명작 [불의 전차]를 패러디하는 부분을 만들 때 리차드 커티스에겐 도움을 요청하고, 또 도움을 받은 것이 시초가 되어 서로를 알게 되었습니다. 리차드 커티스는 당시를 추억하며 “올림픽 개막식 한복판에선 그렇게 코믹한 것을 감독하다니 대니 보일 감독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기발힌 것은 물론, 전혀 숱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전세계에선 가장 많은 스포츠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저녁 시간, 전세계 시청자들이 보았을 때 대니 보일의 이 같은 올림픽 감독은 확실히 대담한 행보였으며 여러 가지 의미에선 관습을 깬 일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접근 방식이 대니 보일의 예술성을 절대적으로 보여줍니다.

 

 “대니 보일은 장면의 모든 순간마다 더 많은 것을 이끌어내길 바랐고, 덕분에 더 신나게 작업했습니다. 그는자기 자신을 초월하는 영화제작자임이 분명합니다. 그는 계속해서 어떻게 위르겐 클로프 축구 감독이 ‘게겐프레싱[Gegenpressing]’이라는 전략을 가지고 리버풀 팀을 이끌었는가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가능한 마지막 하나까지 쥐어 짜서 공격적으로 플레이하는 전략이었는데요, 대니 보일은 그가 늘 원하는 게 바로 그런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의 성대한 영광 이후로 6년이 지난 후, 리차드 커티스는 [예스터데이] 시나리오 초고를 대니 보일에겐 보냈습니다. 그러면서도 사실 대니 보일 감독이 이 영화를 맡겠다고 대답할 거라는 희망은 딱히 갖지 않았습니다.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은 안티 [트레인스포팅]이고, [트레인스포팅]은 안티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입니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영국적이고 강렬하고, 영화적이며, 감정을 한껏 끌어올리는 엔딩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전의 양면을 다 갖춘 셈입니다. 한 마디로 예측가능하기도 하고, 예측할 수 없기도 한 것입니다.”

 




 그 이후 대니 보일 감독은 시나리오를 읽고 바로 그에겐 화답을 전했습니다. “첫 페이지를 펴자 마자 앉은 자리에선 다 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시나리오는 타고난 천재의 글 같았습니다. 시나리오를 읽은 그 자체가 경이로움과 놀라움으로 가득 찼고 이 또한 기쁨이었습니다. 영국 서퍽[Suffolk] 출신의 관심 없는 싱어송라이터의 뮤지션이 이 세상 그 누구도 비틀즈를 기억하지 못합니다는 그 단순한 아이디어를 요렇게 만들 수 있습니다는 것은 정말 기적입니다”라고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이후 대니 보일과 리차드 커티스의 파트너십에선 베번 PD는 전혀 다를 것 같은 두 아티스트 사이에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흥미롭게도 리차드 커티스와 대니 보일은 모두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트레인스포팅]과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결혼식]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습니다. 두 사람이 만든 영화는 모두 지극히 영국적이고 비평과 대박 면에선 모두 두 마리 토끼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둘의 공통점은 이후 할리우드로 진출하지 않고 자신의 영화를 만들 곳으로 영국을 선택해 이곳에 정착했습니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작품에 있는 문화적 특징이 중요한 요소였습니다는 것을 두 사람은 모두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고 자란 문화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 때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는 것이 진정한 선견지명입니다. 이 콤비들은 이후 엄청난 성공을 이루셨고, 영국에 남아 영국 영화를 만듦으로써 현대 영국 영화에 대한 모든 인식을 바꿨습니다. 이후 영국 영화들은 전세계 박스오피스에선 엄청난 성공을 거뒀습니다. 영화인으로서 언젠가는 두 분이 같이 작품을 하게 될 거라는 건 아주 타당한 생각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이 둘의 공통점은 모두 음악을, 특별히 팝송을 정말 사랑합니다는 것입니다. 정말 기적적으로 이 두 사람이 한 작품에 참여합니다면 그것은 팝송에 대한 얘기가 될 것이라고 모두가 장담했습니다. 결국 영국이 낳은 전설적인 명감독과 명각본가, 전설적인 비틀즈의 노래들, 그리고 또 다른 영국 브랜드인 워킹 타이틀. 영국 영화제작과 창조력의 관심가는 콤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라고 전했습니다.


다시금 얘기하지만~ 마지막 쿠.키.는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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