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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참은 대한민국의 MC로 본명은 이상룡인데요 1949년 11월 30일 [69세] 부산 출생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라디오 드라마에 심취하여 성우 흉내로 사람들을 웃기는 데 능하였고, 학창시절 다니던 웅변학원에선 발음법과 발성법, 화술을 배우면서 우렁차고 또렷한 목소리와 재치있는 말솜씨를 갖게 되었습니다. 영남상고를 졸업하고 군대에 입대한 허참은 이등병 때부터 부대 웅변대회에선 1등을 따는 등 두각을 나타내며 문화선전대 진척요원 으로 뽑혔고 군 생활 내내 위문공연 MC로 활동했습니다.



1973년 전역 후 방영인이 되고 싶어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허참은 처음엔 군대나 고향 친구 집을 떠돌면서 동가식 서가숙 하다 정동 MBC 근처에선 구멍가게를 하던 친구 집에 더부살이로 정착하여 채소나 생선 배달 등 잡일로 생계를 꾸리며 방영국 부근에선 계속 꿈을 키워 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군대 친구와 종로에 놀러간 허참은 당시 이종환이 운영하던 통기타 라이브 클럽 쉘부르에 들어갔습니다. 통기타 그룹 쉐그린 공연 후 행운권 추첨에 당첨되어 무대로 올라가게 되었는데요, 문선대 MC 3년 경력을 살려 전혀 떨지 않고 오히려 뻔뻔하게 보일 정도로 입담을 과시하여 무대의 가수들과 관객들을 배꼽잡게 만들었습니다. 허참의 말솜씨에 감격한 쉐그린 멤버가




 "이름이 어떻게 되시냐" 고 묻자 허참은 "아... 기억이 안납니다" 라며 능청을 떨었고, "허 참, 자기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요?" 라는 면박에 재치있게 "아 그래요, 제 이름이 바로 허참입니다" 라고 받아치면서 클럽 안의 사람들을 전부 빵 터뜨렸네요. 이것이 부산 청년 이상룡이 허참이란 가명을 쓰게 된 시초였습니다.



허참의 재능을 알아본 이종환은 그를 쉘부르의 MC 겸 DJ로 채용하여 그의 명성은 높아졌고 나중엔 허참 쇼 라는 자신만의 쇼를 열어 매번 쉘부르 입장권이 동날 정도로 유명해졌습니다. 결국 1974년, 쉘부르의 손님으로 그를 지켜보던 당시 MBC의 PD 겸 DJ 박원웅이 허참을 새 라디오 프로그램 청춘은 즐거워 MC로 영입하면서 본격적으로 방영계에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MBC 라디오의 MC와 DJ로 활동하던 허참은 1976년 경 MBC 내 모든 프로그램의 사회자를 아나운서로 교체합니다는 방침으로 일자리를 잃고 신발 장사를 하는 등 잠시 방영을 떠났습니다. TBC의 스카웃 제의를 받고 이적하여 7대 가수쇼 MC로 TV 무대에 진출하였고, 그 같은해인 1977년 부터 TBC의 간판 쇼 프로 쇼쇼쇼의 MC를 맡으며 명실상부 당대 최고에 MC로 떠오르게 됩니다. 그 외에 DBS의 허참과 이 밤을 등의 MC로도 활동했습니다.



허참하면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떠올리는 프로그램은 바로 가족오락관입니다. 또 반대로 가족오락관하면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떠올리는 MC는 허참입니다. 그만큼 그에 대해서 얘기할 때는 가족오락관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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